“44년이 흐른 5·18, 왜곡 맞서 진상 규명돼야”
“44년이 흐른 5·18, 왜곡 맞서 진상 규명돼야”
  • 대구신문 박용규 기자
  • 승인 2024.07.0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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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4주년 역사기행 성료
기자협회 회원 전국서 30여명 광주 방문
5·18 역사기행에 참가한 기자협회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5·18 역사기행에 참가한 기자협회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경철, 김남석, 윤상원, 채수길.”

19805월 광주에서 안타까운 희생을 당한 민주열사들이다. 그해 51827일 벌어진 항쟁에 참여한 광주시민들은 전두환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해 무참히 짓밟혔다. 사망자는 166, 부상자는 3천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문제 해결의 5원칙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피해 배상, 기념사업으로 정의된다. 광주에서는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5·18에 대한 진상규명은 현재까지 17개 직권조사 과제 중 11개의 진상규명 결정과 6개의 불능 결정이 내려졌다.

지난 9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 4층 중회의실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강연이 열렸다. 운동 44주년을 맞아 911일 광주전남기자협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지사 주관으로 진행된 5·18 역사기행의 일환이었다. 전국 각지의 기자협회 회원 30여명이 모여 강연과 사적지 탐방, 순국열사들을 향한 참배 등으로 5·18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첫날은 강연 중심으로 진행됐다. 조진태 전 5·18기념재단 상임이사와 곽송연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이 각각 ‘5·18 진상규명의 과정국가폭력의 가해자를 중심으로 강의했다.

조진태 전 상임이사는 오랜 세월 지속된 여러 차례의 날조, 왜곡으로 유공자와 유족들의 정신적 상처는 심화돼왔고 진상규명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의 가상현실(VR) 게임 그날의 광주가 많은 논란을 낳고 삭제됐다.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왜곡했다는 논란이 일면서다. 시민과 계엄군이 전투를 벌인 비극적 참상을 게임으로 재현함과 게임머니로 아이템을 사면 북한군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설정도 문제가 됐다. 로블록스 측은 당사의 규정은 현실 세계의 민감한 사건의 묘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해당 게임을 삭제 조치했다.

조 전 상임이사는 “5·18에 대한 용서와 사과의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성찰하고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며 “1988년 국회 청문회를 시작으로 30여년간 진상규명의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강조했다.

곽송연 연구원은 과거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노사이드를 주도한 반인권범죄 옹호자들과 그 실태에 대한 조사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라고 부각했다. 제노사이드는 인종, 민족, 종교 따위의 차이를 원인으로 특정 집단에 대해 가해지는 집단 학살을 의미한다.

둘째 날인 10일 일정에서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5·18 사적지를 답사했다. 기자들은 국립5·18민주묘지, 망월동 옛 묘역을 찾아 합동 참배를 하고 민주 열사들의 넋을 기렸다. 계엄군의 헬기 사격 탄흔이 남아 있는 전일빌딩245, 항쟁지였던 전남대학교 앞과 금남로, 옛 전남도청도 둘러봤다. 민주묘지의 묘소들과 전일빌딩에 새겨진 245개의 탄흔 등은 숙연함과 함께 5·18을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알려야 할지에 대한 과제를 남겼다.

5·18민주묘지와 망월동 옛 묘역에는 열사들과 5월의 참상을 알리려 했던 언론인, 행방불명자 등이 묻혀 있다. 56살 아이가 가족, 친척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동시에 산화해 버린 비극적인 경우도 있었다. 묘지 한편에는 영화 택시운전사로 널리 알려진 독일 언론인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유품도 안장돼 있다.

고 김남석 열사는 항쟁 당시 사망한 후 시신을 못 찾아 망월동 묘지에 가묘가 만들어졌는데 1997년 유공자들의 시신이 국립묘지로 이장될 때 DNA 감정 과정에서 신원이 밝혀졌다. 안타깝게도 가묘에서 불과 몇 m 떨어진 무명열사 묘의 주인공이 그였다. 김 열사의 유족은 그를 몇 m 앞에 두고 다른 묘에 제사를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순 5·18행사집행위원회 위원장은 묘역에는 끝내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11명의 무명열사도 계신다지금의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었던 데는 수많은 열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잊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신문 박용규 기자 pkdrgn@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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