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진흥황 560년 전 울진 성류굴 다녀가다"
영남일보, "진흥황 560년 전 울진 성류굴 다녀가다"
  • 대구경북기자협회
  • 승인 2019.05.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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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명이 새겨진 석주 전경. 출처=영남일보 홈페이지(오세윤 사진작가 촬영

경북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에서 신라 제24대 임금인 진흥왕(재위 540∼576)이 560년에 다녀갔다는 명문이 발견됐다.

영남일보는 5월 24일 자 1면에 <성류굴서 ‘眞興王擧’ 국보급 명문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울진군은 23일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 심현용 울진군 학예연구사, 신라사 전공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등 문화재 자문위원들이 함께 판독한 '庚辰六月日(경진육월일)/ 柵作익(木+益)父飽(책작익부포)/ 女二交右伸(여이교우신)/ 眞興(진흥)/ 王擧(왕거)/ 世益者五十人(세익자오십인)'이라는 신라 진흥왕 성류굴 행차 '경진년 명문'을 공개했다.

이들은 지난 22일 성류굴 탐사를 벌여 이 명문을 확인했다.

최근 성류굴에서 다양한 각석(刻石) 명문 30여 개가 확인된 데 이어 이번에 발견된 명문은 삼국사기 등 문헌에 나오지 않는 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남일보는 성류굴에 신라 화랑은 물론 임금까지 다녀갔으며 당대 정치·사회 변화상을 알려주는 획기적 기록으로 평가된다고 전했다. 

울진군에 따르면 명문이 발견 된 곳은 지난 3월 신라시대 문자자료가 무더기로 확인된 성류굴 내 제8광장이다.

지표 기준 약 2.3m 높이에 가로 35㎝·세로 40㎝인 굴곡진 면에 음각했다.

글씨는 예서체(고대 서체인 전세를 간략하게 만든 서체) 느낌을 주는 해서(정자체)다.

명문은 세로 6행으로 1행에 5자·2행 5자·3행 5자·4행 2자·5행 2자·6행 6자로 모두 25자를 새겼다.

글자 크기는 가로 7∼8㎝, 세로 7∼12㎝ 가량이다. '眞興王擧(진흥왕거)'라는 네 글자가 특별히 크게 써있다.

명문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진흥왕이 560년 6월 성류굴을 다녀간 기록이다.

해당 문구는 '경진년(560·진흥왕 21) 6월 ○일, 잔교(棧橋)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로 해석된다고 울진군은 설명했다.

심현용 울진군 학예연구사는 "성류굴의 신라 명문들은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에 버금가는 신라 금석문의 보고로 한 권의 역사책이 새로 발견된 것과 같은 충격적인 사료"라며 "향후 울진지역에서 진흥왕 순수비가 발견될 가능성도 크다"고 강조했다.

또 영남일보는 "지금까지 성류굴에서 발견된 명문만으로도 국보급 가치가 충분하다. 동굴에 대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 등 전문기관의 전수조사가 시급하다"는 자문위원들의 말을 인용했다.

한편, 영남일보는 지난달 12일자 2면에 <울진 성류굴 내부 종유석·암벽 1200년前 화랑·승려 글씨 발견> 이라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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