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가려졌던 미완(未完)의 역사 제주 4·3’ 
‘어둠 속에 가려졌던 미완(未完)의 역사 제주 4·3’ 
  • 대구경북기자협회
  • 승인 2019.06.2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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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대구취재본부 김무진 기자
한국기자협회의 ‘전국 언론인 초청 제주 4·3 평화기행’에 참가한 언론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기자협회의 ‘전국 언론인 초청 제주 4·3 평화기행’에 참가한 언론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 4·3’.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 7년 여간 군인과 경찰, 제주도민 간 발생한 무력 충돌로 상당수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건이다. 

육지 사람으로서 사실 제주 4·3은 해방 후 일어난 어둠의 역사 중 하나 정도로 알고 있었던 것이 전부였다.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몰랐을 뿐 더러 역사적 진실을 알아보려는 생각이나 행동도 한 바 없었다. 

제주도로 여러 차례 여행을 다녀왔음에도 불구,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은 철저한 육지인(陸地人)적 사고 때문이었다.

그러다 지난 3월말 제주 4·3 71주년을 맞아 한국기자협회가 마련한 ‘전국 언론인 초청 제주 4·3 평화기행’에 우연히 참가했다. 

지난 3월 29~30일 1박2일간 열린 4·3 평화기행 행사에는 한국기자협회 소속 전국 60여명의 언론인들이 참여해 4·3과 관련한 곳들을 직접 둘러보며 이론적으로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기회를 통해 미처 몰랐던 ‘제주의 아픔’을 알게 됐고 철저한 진상 규명,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이 시급하다는 걸 깨달았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첫 일정은 제주시 봉개동 소재 4·3평화공원 방문이었다. 

10여회의 제주 여행을 다녔지만 처음 찾은 곳이었다. 

이곳은 4·3 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동시에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 및 평화·인권 교육의 장으로 활용코자 지난 2008년 3월 문을 연 곳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4·3평화기념관을 비롯해 위령제단, 추념광장, 위령탑, 각명비 등 여러 시설들을 둘러보며 잘 알지 못했던 제주 4·3의 어둠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희생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어 이날 오후 마련된 특강은 제주 4·3의 전국적인 관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골자로 한 내용으로 펼쳐졌다.

특강에서는 오랜 기간 제주 4·3을 심층 취재한 허호준 한겨레신문 기자가 강사로 나서 ‘언론에 비춰진 제주 4·3’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는 “제주 4·3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큰 아픔의 역사 중 하나이자 반세기 이상 금기의 영역에 있던 어둠의 역사였다”며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제주를 넘어 육지의 관심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국 언론인 초청 제주 4·3 평화기행’에서 홍춘호 할머니(왼쪽 첫 번째)가 4·3 당시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 마을에서의 토벌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 상황 및 자신이 겪었던 동굴 피신 생활상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국 언론인 초청 제주 4·3 평화기행’에서 홍춘호 할머니(왼쪽 첫 번째)가 4·3 당시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 마을에서의 토벌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 상황 및 자신이 겪었던 동굴 피신 생활상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튿날은 더 생생한 역사의 흔적을 둘러보고 생존자의 증언을 들으며 비극의 참상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경험을 했다.

이날 우선 송악산 입구 쪽에 위치한 섯알오름 학살터를 비롯해 진지동굴, 고사포 진지 등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불편한 역사적 현장을 찾아 다시 한 번 아픈 역사를 되새겼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문화유적인 동광리 ‘무등이왓’이었다. 

이곳은 예전 130가구 정도가 살았지만 4·3 이후 상당수 주민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마을이 사라진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제주 4·3 당시 서귀포 ‘큰넓궤 동굴’로 피신한 마을 주민들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2013년작 저예산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의 실제 모델 중 한명이자 생존자인 홍춘호(82) 할머니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생생히 들려줬다. 

한편 지난 2000년 제정된 제주 4·3 사건 특별법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한다. 

희생자는 2만5000~3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당시 제주 전체 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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