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독립’을 ‘통일’로 염원하며 떠난 임시정부청사”
“민족의 ‘독립’을 ‘통일’로 염원하며 떠난 임시정부청사”
  • 대구경북기자협회
  • 승인 2019.07.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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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신문 최대억 서울정치부장
대구신문 최대억 서울정치부장

‘한국기자협회 윤리 강령’의 서두에는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가진 언론의 최일선 핵심존재로서 공정보도를 실천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자유로운 언론활동을 통해 나라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국가발전을 위해 국민들을 올바르게 계도할 책임과 함께, 평화통일·민족화합·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기여해야 할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다.’라고 제시돼 있다.

기자에게 '평화통일·민족화합·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기여할 존재임은 과거나 현재에도 변함없고, '사명감'이 있는 이유중 하나인 것이다.

외세에 의한 남북 분단정부 수립을 막지 못해 미완의 상태로 끝나버린 ‘독립’을 ‘통일’로써 완성해야 하는 작금이긴 하나 현대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어색한 관념어(운동권 인사들의 메인 키워드로 쓰여 보수우파 성향의 인사들에게 이 용어를 즐겨 쓰는 성향의 사람들을 종북 혹은 친북 성향의 인사들로 구분)로 몰락하는 즈음, 한국기자협회가 임시정부 수립과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고 독립운동과 저항정신을 기억하고자 마련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중국단기연수(6월16~21일)’가 분단의 장기화에 따라 왜곡된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고 성찰하는 기회였다고 사료된다.

이번 국내외연수기간 동안 우리나라와 지리·역사·문화적으로 수천 년이 넘는 관계를 유지해 온 중국의 정치사를 비롯 △미디어와 ICT산업 △기업문화 △동북지역 항일투쟁과 조선족·동북공정 △과학기술 부상과 AI 현주소 △대한민국임시정부 사적지 △경제변화와 금융시장 △신중국 사용설명서 △현지 견학 등 다양한 채널의 교육 과정을 통해 중국이 발전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정치·경제·사회적 현상의 원인을, 또 이에 대처하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견고하게 학습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은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우리와의 오랜 관계사를 거쳐 3·1운동 이후에는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선포한 지리적 여건을 마련해준 나라지만 남북전쟁→1992년 한·중 수교→사드 위기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수교 이래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다가도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는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엄청난 회오리를 불러일으키는 등 현재도 ‘운명적 밀월(蜜月)관계’를 오르내리고 있다.

한중 관계는 마치 신혼 초 꿀맛처럼 달콤한 몇 달 간의 밀월 기간(서로의 장점만 보이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와 설계로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는 상태)이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형국을 보여왔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에는 일제의 잔혹한 탄압에 맞서 국권 회복 등을 위해 상하이(1919년)를 시작으로 항저우(1932), 전장(1934), 난징(1937), 창사(1937), 광저우(1938), 류저우(1938), 치장(1939)을 거쳐 1940년 충칭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열들의 숭고한 역사의 현장을 임대해 준 땅임은 부정할 수도 없다.

언제든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 친구가 되지만 한 쪽이 피해를 주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중국을 ‘빙산의 일각쯤’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연수에서는 개인적으로는 앞서 2006년과 2011년, 2013년, 2014년 중국 상하이시와 교육기관, 주상하이한국총영사, 국내 정부 관계자 등에 건의 및 취재했던 △중국 교과서내 한국의 동해·남해를 각각 일본해(日本海)와 조선해(朝鮮海)로 표기한 왜곡 △상하이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 청사내 노태우 대통령 휘호 오역 △상하이임시정부 청사를 다녀간 한국대통령에 대한 중국 정부의 하대(下待)의전 등 지적 보도 후 관련 행정에 대한 시정이 이뤄졌거나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선 2011년 처음으로 상하이임시정부를 방문했던 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청사에 남긴 친필 휘호가 오역·방치돼 있었지만 당시 중국 측은 물론 상하이대한민국총영사관 등 외교부 관계자들조차 이를 외면, 현재는 시정된 것을 확인했다.

이는 지난 1992년 9월30일 노 대통령이 상하이임시정부청사를 방문, 청사 수리와 보호에 사용하도록 성금을 기증하는 자리에서 “민족 독립운동의 성전에서 한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라고 휘호를 남겼는데, 아래 하단에 번역된 중국어는 "民族精神永放光芒 (한민족의 정신이 영원히 빛나길)"이라고 오역돼 있었다.

‘한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남긴 노 전 대통령의 글이 '한민족의 정신이 영원하길 기원'하는 내용으로 둔갑한 것이다.

전체의 뜻을 살려 번역한 의역이란 있을 수는 있지만, 이 경우는 한민족이 ‘더 낫고 좋은 상태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감’이란 사전적 의미의 ‘발전’이라는 중국어 단어가 있는데도 불구, 굳이 이 단어를 빼고 노 대통령이 쓰지도 않은 ‘정신’ ‘빛’이라는 엉뚱한 단어를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상하이대한민국총영사관 등 우리 외교부에 “‘정신이 영원히 빛나길’→ ‘한민족의 발전’으로 바꿔 民族永恒的發展로 변역하면 정확한 표현이 된다”고 지적하고 상하이시 문화담당 공무원에게 이를 알려 수정을 요구하는 등 노력 끝에 8년만에 다시 찾은 이 곳엔 '民族精神永放光芒→民族的无限發展'로 수정돼 있었다.

또 당시 상하이임시정부청사 1층 복도의 벽면에 걸린 사진액자에는 이곳을 방문한 5명의 우리 대통령(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사진이 나란히 전시된 가운데, 유일하게 이명박 대통령만 상하이 부시장이 수행하는 관례에서 벗어나, 구청장이 수행하는 모습이 기록돼 중국 현지 민족예술가의 인터뷰를 인용, “중국 측의 수행사진과 수행인을 설명하는 사진설명은 그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이를 보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화가 치밀 것”이라며 중국의 의전하대를 지적·보도(대구신문 2011년10월4일자 사회면 톱)한 바 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방문시에는 역대 대통령 처음으로 상하이 시장이 의전하는 모습이 사진에 담겨져 있었다.

다만 현재 사진액자가 걸린 ‘단체영상실’ 건물은 앞서 2011년 방문 당시에는 관광객들의 관람 코스로 문을 활짝 열어놓았지만 지금은 문을 닫은 채, 관람을 요구하는 경우에만 허용토록 관리규정이 바뀌어 있었다.

끝으로 2006년과 2013년, 2014년에 중국 정부 관계자와 교육기관 등에 건의했던 ‘동해를 일본해로 왜곡 표기’한 것과 관련, 이번 연수에서 중국의 한 국제문제 연구원 교수로 부터 자국의 교과서가 ‘한국의 동해·남해를 각각 일본해·조선해로 표기한 왜곡을 인정한다’는 주장을 받아냈다.

싱리쥐(形麗菊·형려국) 푸단(復旦)대 조선한국연구센터 부주임 교수는 이번 연수에서 만나 “중국 지도에서 한국의 남쪽과 동해쪽이 조선해와 일본해로 표기돼 있는 것은 문제소지가 있다고 본다”면서 “앞으로 중국 정부와 학계 등을 통해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싱리쥐 교수는 이번 연수단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중문화 인문교류 현황과 과제’ 강의 후 간담회에서 ‘중국 초·중·고·대 정규 교과과정에서 한국에는 남해와 동해라는 고유명사가 있음에도 중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한반도 포항 아래(부산까지)는 조선해로, 포항에서 북한(함경북도)까지 이어진 바다는 일본해로 가르치는 것에 문제가 있지않냐’는 질의에 “앞서 인문교류 차원에서 고민해온 문제였다.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노력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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