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신문 정은빈 기자 "누군가의 죽음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
대구신문 정은빈 기자 "누군가의 죽음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
  • 대구경북기자협회
  • 승인 2019.10.1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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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2019 사건기자 세미나’ 후기
대구신문 정은빈 기자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간 제13호 태풍 ‘링링’이 제주 서귀포에 도착하기 전날인 지난 5일. 제주 서귀포 한 호텔에서는 한국기자협회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주최하는 ‘사건기자 세미나’가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언론인 60여명은 이날부터 6일까지 이틀간 진행된 세미나에서 자살 사고 보도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첫날 오후 2시 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의 ‘자살 보도의 변화와 일가족 자살사건 보도의 시사점’ 주제발표를 시작으로 △영상콘텐츠 자살 장면의 영향력(김영욱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 대학원 교수) 등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신 부센터장은 유명인 자살 사고와 보도 건수, 사고 추이를 겹쳐 보여주며 보도가 이후 사고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이어 사고 최소화를 위해 보도 자제와 표현, 묘사 등에 권고 기준 준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 교수는 뉴스 방송에 더해 드라마, 영화 등으로 노출되는 영상콘텐츠 자살 장면의 가이드라인 필요성을 알렸다.

두 발표자는 취재진이 자살 사고를 다룰 때 충분히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사고 경위와 방법에 대한 지나치게 구체적인 보도가 모방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염려에서다.

발표 내용보다 흥미로운 것은 토론이었다. 발표 후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사고 보도와 표현 수위가 이후 사고 발생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을 객관적 수치로 증명할 수 있는지였다.

보도 건수는 같은데 ‘자살’을 ‘극단적 선택’ 등으로 표현하는 것만으로 영향력이 달라지는가도 의문이었다.

자살예방센터에서는 전후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숫자로 증명할 수 없지만 자살 행위에 이르게 하는 ‘외부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살 사고는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 양극화와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자살 인원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희소성을 잃으면 가치는 줄기 마련이다. 취재 거리도 마찬가지다. 사고 수가 느는 만큼 보도 대상 선별의 중요성도 커졌다.

‘어떻게’보다 ‘왜’에 집중하자는 것이 나름대로의 결론이다. 이날 자살 사고 보도의 바른 사례로 ‘송파 세모녀 자살사건’이 여러 번 언급됐다.

극단적 결과를 부른 이유를 통해 사회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자살예방센터도 언론의 계속된 문제 제기에 자살예방사업 예산이 대폭 증가한 점을 인정했다.

경우에 따라 자살 사고 보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사고 자체보다 그 사고가 주는 의미를 들여다봐야 한다.

고인이 됐다고 해서 그의 죽음을 함부로 다뤄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문제는 이를 다루는 방식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이후를 사는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는 가치 있는 일로 만드는 것 또한 언론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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