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정제 영진전문대 대외협력팀장
[인터뷰] 김정제 영진전문대 대외협력팀장
  • 대구경북기자협회
  • 승인 2020.07.0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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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촉이 살아있어야 최고의 홍보맨”
영진전문대학교 대외협력팀 김정제 팀장.
영진전문대학교 대외협력팀 김정제 팀장.
2001년 8월 1일. 이날은 영진전문대학교 대외협력팀 김정제 팀장 삶의 터닝포인트이자 제2의 출발점이다. 
이날 김 팀장은 ‘주문식 교육의 산실, 영진전문대학(당시)’ 교직원 ID카드를 가슴에 달고 ‘대학 홍보’라는 새로운 길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2020년 6월. 김 팀장은 여전히 보도자료 자판을 두드리고, 출입기자들과 메일, 카톡을 주고받는다.
또 오늘은 어떤 보도자료를 준비할지, 대학과 지역의 여론 동향은 어떤지 꼼꼼히 살핀다. 
홍보팀에서, 대외홍보팀, 대외협력팀으로 부서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한 직장, 같은 업무로 어언 20년을 앞두고 있다.

김 팀장은 대학에 오기 전 국내 기업에서 언론홍보에 눈을 떴다. 

그는 “기업에서 쌓은 경험이 토대가 돼 영진전문대에서 홍보 업무는 무난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영진 초기에는 언론홍보와 광고, 홍보영상, 인쇄물 제작까지 홍보 전반의 업무체계를 잡아나갔다. 

이런 일들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언론홍보의 전문성이 대두됐고, 언론홍보에만 10여 년이 넘게 몸을 담고 있다.

대학에 있어 홍보의 역할은 무엇일까.

김 팀장은 “한때 대학이 ‘꿀직장’이라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학들이 학령인구 쓰나미를 헤쳐나가야 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가운데 ‘홍보에 죽고 홍보에 산다’는 말이 엄연한 현실로 다가왔다”며 “대학이 가진 경쟁력, 나아가 대학의 정체성을 사회와 소통하는 창구, 즉 채널이 홍보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시기에 홍보가 짊어져야 할 무게감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홍보 업무 담당자라면 누구나 첫 번째 꼽는 자세가 기자들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신뢰가 없는 홍보 활동은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다음으로는 ‘열정’을 꼽으면서 한 가지 사례를 들었다. 

“이순신 장군 탄신일을 앞둔 어느 날 우리 학생들이 학익진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해 충무공 기념관에 설치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보도자료는 작성했는데, 사진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막막했죠. 고민 끝에 학익진 영상을 빔프로젝트로 스크린에 띄우고 제작에 참여한 학생들을 어렵게 촬영한 뒤 자료를 냈어요. 만족할만한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내부의 변화, 작은 얘기들에도 귀 기울이고, 살피면 좋은 홍보거리(?)들을 발굴할 수 있다. 또한 때에 따라서는 홍보를 리드할 수 있는 감각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김 팀장은 “사회 변화를 읽고 시의성에 맞는, 시쳇말로 기사로 먹히는 홍보 아이템을 발굴하는 것은 결국은 담당자의 열정과 열린 시각 즉 촉(觸)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보 업무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다.

영진이 일본 IT기업 취업을 추진한 초기, 3명이 소프트뱅크에 입사했는데 이런 사연을 한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취재했다. 

문제는 사진 확보. 여러 차례 취업자를 통해 시도했지만 회사 보안 규정 등의 이유로 무산돼 결국은 기사 채택 여부가 사진으로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월요일자 기사 게재 예정이라고 토요일 오전에 통보를 받고 이것은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팀장은 과감히 내부에 보고한 뒤 서둘러 일본으로 출발했다.

도쿄국제공항에 도착했는데, 만날 졸업자 주소(숙소)를 입국신고서에 적지 않아서인지, 세관 검사에서 온몸을 뒤지고 마지막엔 배변(?)통로까지 찔러보는 검사를 당했다. 

사진촬영도 쉽지는 않았지만,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기사와 사진이 톱에 걸린 신문이 배달됐고 대학 내에서 반응은 뜨거웠다. 이것이 김 팀장이 일하는 스타일이다.

홍보 담당으로서 보람을 느낄 때도 많다.

그 중에서도 영진전문대를 통해 반듯한 사회인으로 출발하는 데 성공한 학생들의 사연이 기사화되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특히나 유(U)턴 학생이나 어려운 가정형편을 극복하고 대기업에 합격한 학생들을 만날 때면 마치 내 가족 사연인 양 마음 설레고, 홍보에 더욱 정성을 기울인다.  

오랜 기간 홍보를 담당하면서 가깝게 지내는 기자들도 많다.

김 팀장은 “많은 분과 함께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하다. 초기에 출입하셨던 분들은 국장 등으로 승진을 했고, 퇴직으로 제2의 삶을 열어가는 분들도 있다”며 “여러 기회로 만난 소중한 인연에 늘 감사하며, 가끔은 국수 한 그릇, 차 한 잔으로 만나기도 한다”고 했다. 

비록 연락이 닿지는 않지만, 혹이나 지면으로 마주할 때면 SNS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응원한다.

홍보 담당자로서 언론의 변화도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그는 “지역 석간신문을 읽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디지털미디어 시대가 도래했다. 손안의 화면으로 기사를 읽고, 수용자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개인이 유튜브 등을 통해 직접 세상과 소통하는 시대가 펼쳐졌다”며 “그래도 자식들에겐 신문 하나 정도는 구독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지면을 넘기며 여러 분야 다양한 기사를 접할 때 사회를 보는 안목을 넓힐 수 있고 이런 대안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팀장이 제작에도 관여한 영진전문대의 TV 광고에 이런 카피가 있다. “영진이 가면 길이 됩니다.” 

그는 이 광고가 영진이 추구해 온 퍼스트 무버(First-Mover) 정신을 잘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김 팀장은 “‘현장 맞춤형 인재 양성’이라는 전문대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 길을 꿋꿋이 걸어오면서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전문대학이라는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며 “이러한 대학 역사를 홍보로 지속할 수 있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복이라고 생각하며 그동안 함께 한 언론 그리고 기자분들에게 지면으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아이쿠, 현장을 발로 뛰는 기자분들 큰일 났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는 김 팀장.

그는 “지역에서 큰 사건과 사고 발생할 때마다 그 현장에는 늘 대구경북기자협회 기자들이 있었다”며 “건강해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 올여름, 건강하게 대프리카의 무더위를 잘 이겨내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역에 큰 이슈가 생길 때마다 기자들을 걱정하는 마음이야 말로 김정제 팀장이 ‘최고의 홍보 베테랑’이라 불리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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