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농민들로부터 사들인 벼가 보관창고에 가득 쌓여있습니다.”
지난 7월 중순쯤 장바구니 물가 급등 관련 취재를 위해 대구 시내의 한 대형마트를 찾았다.
육류와 생선, 과일, 채소류 코너에 장 보러 온 주부들이 많았다. 하지만 쌀 판매대 주변에는 손님들이 거의 없었다.
가격표를 보니 쌀값도 예년보다 40~50% 저렴했다. 다른 물가는 다 오르는데 쌀값만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마트 관계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쌀 소비가 제대로 안돼 쌀값만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벼를 보관하는 경북지역 농협 양곡창고는 재고로 넘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촉’이 왔다.
수소문 끝에 대구경북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운영협의회장과 연락이 닿아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지난해 가을 수매한 벼 5천200톤(조곡 40㎏들이 13만여 가마)을 그대로 보관 중인 경북 포항의 한 농협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9개월 동안 쌀 한 톨도 팔리지 않은 곳이다. 여기뿐만 아니라 벼를 보관하는 경북 지역농협 전체 양곡창고가 재고로 넘쳐 지역농협마다 지난해 매입한 벼를 처리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취재 약속일인 17일 오전 9시쯤, 대구에서 1시간 20분을 달려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신포항농협에 도착했다.
바로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양곡 보관창고로 향했다. 5m 높이의 묵직한 철문을 열자 벼를 담은 1t짜리 톤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에 넓은 시야각을 확보하기 위해 지게차에 올라 6~7m 높이의 고공에서 광각 렌즈(wide-angle lens)로 촬영을 했다.
이날 취재를 위해 만난 오호태 대구경북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운영협의회장은 “지난해 40㎏들이 한포대당 평균 6만5천원에 벼를 매입했는데 1만4천원의 손해를 보더라도 5만1천원에 팔려고 해도 사려는 곳이 없다”며 “2개월 후인 9월이면 햅쌀이 나오는데 그때는 5만원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보관창고 관계자는 “50년이 넘은 낡은 창고에서 벼를 제대로 보관하려다 보니 습도 조절 등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비용이 들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 수매해 9개월째 보관 중인데 다음 달이면 쌀벌레가 생겨날 시기라서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이러니 쌀값은 계속 떨어지고, 중간상인들은 추가 하락을 기대하며 지역농협에서 쌀을 매입하지 않는 등 산지 물량 적체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쌀 재배 농민들은 “다른 물가는 다 오르는데 쌀값만 떨어지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나서줘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한 농촌의 현실을 극명한 ‘한 장의 사진’으로 취재해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26년간 현장을 지켜온 사진기자로서 ‘벼 재고 산더미’의 추억은 잊지 못할 것이다.